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우야 아키라 (문단 편집) === 초등학교 6학년 === 아버지 토우야 명인이 경영하는 [[기원(보드 게임)|기원]]에 찾아온 [[신도우 히카루]]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히카루가 기원에서 자기 또래인 아키라를 발견하고 바둑 한판 두자고 제안해 대국하게 되었는데, 아키라는 히카루의 엄지와 검지로 돌을 잡는 초보적인 모습에 방심 → 이상할 정도의 고전적인 수(마늘모)에[* 소목에 날일자로 걸쳤을 때 마늘모로 받는 정석. 과거엔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으나 덤이 생긴 현대바둑에선 느리다며 잘 두어지지 않다가 바둑 인공지능들이 이 수를 두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따라 두게 되면서 오히려 이제는 고전적인 수가 아니게 되었다.] 호기심 → 자신의 실력을 시험하는 수에 경악하는 3단 변화를 보였다. 결과는 아키라의 2집 차 패배였는데[* 다만 이건 대국 전에 아키라가 덤을 적용하고 두자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현대 바둑에서 추가된 '''백에게 덤을 주는'''(이 작품이 연재 되던 90년대 말에는 5집 반, 현재는 한국과 일본에선 6집 반/중국에선 7집 반이 백에게 주어진다.) 규칙을 적용했다면 이 대국은 아키라의 3집 반 승리였다.][* 참고로 이 대국은 1851년 10월에 혼인보 슈사쿠와 혼인보 슈와가 둔 기보를 사용했다. 한국의 프로기사 [[프로연우|조연우]] 二단의 [[https://www.youtube.com/watch?v=QEcj3lO3mZs|해설]].], 패배도 패배였지만, 히카루가 바둑을 단 한 번도 둔 적이 없는 초심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고 만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날의 바둑을 복기만 하다가 히카루를 찾아내서 다시 대국하게 되었지만, 두 번째 대국에서도 완패하고 말았다.[* 본래 사이는 첫 번째 대국 때처럼 적당히 봐주면서 지도기를 두려고 했지만, 아키라가 제 실력을 드러내며 무섭게 공격해오자 자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느껴 어쩔 수 없이 진심 모드로 아키라를 불계로 꺾어버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1CeV1zwZTg8|사이와 아키라의 2차전 해설]].] 이후 계속 히카루에게 집착하게 된다. 명문 카이오 중학교 입학이 확정된 후, 바둑부에 가입해 달라는 교장의 부탁을 거절하고 나오다가 카이오중에서 개최 중이던 바둑 대회를 구경하게 되는데 거기서 결승전 대국을 하고 있는 히카루를 보게 된다.[* 실제로는 [[후지와라노 사이]]의 지시대로 뒀다.][* 1990년 7월 19일 승단전 오카 미츠오(岡光雄) 八단 vs 칸다 에이(神田英) 九단의 대국 내용을 반영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KBUcHYR-c0|해설]]. [[http://web2go.board19.com/gopro/go_view.php?id=17287|당시 기보]].] 그리고 이날 아키라는 대회 종료 후 히카루에게 아름다운 대국이었고 너를 뛰어넘어야만 신의 한 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